글쓴이 : jk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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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일 토요일 한가위...

 

추석에 대구에 내려가지 못한 우리 가족은 점심밥 먹고 산에 올랐다.사과.배.밤.물 따위를 챙겼지만 이 때를 놓칠새라 잽싸게 목초액도 넣었다.온가족이 다함께 텃밭에 가는건 처음 있는 일이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항아리 화장실을 지나 광교산 오르는 땅을 착 밟는 순간,무진장 우거진 나무 숲과  돌맹이 구르는 맨 땅을  쫘악 보는 순간,항아리 화장실을 지나기 전까지 가졌던 모든 걱정과 시름이 한꺼번에 싸악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절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마구 마구 희망이 싹트는 걸 느낀다.하물며 오늘...덩치는 말할것도 없고 수십센티미터 키차이 나는 큰 놈이 작은 놈 손을 잡고 저 앞에 산길을 정겹게 걸어가고 있으니 오늘은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내 배추 잘 자라고 있을까? 그새 다 죽은건 아니겠지?"
뒤따라가며 남편에게 이렇게 물으니
"어이그...신경 하나 안쓰고 잘 자란거 똑 따먹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쯧쯧쯧..."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요런 괘씸한 말을...살짝 열이 치받았지만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9월 초...성당 자매님이 공짜로 배추 모종을 주셔서  너무 쉽게  배추 심고 물에 목초액 타서 두어번 뿌려준게 내가 한 일이니 요런 괘씸한 말을 들어도 참아야겠다.신경 쓴 일이 있다면 얘들이 다 죽었으면 어쩌지...애태운 일 뿐이니...

 

아니!!! 근데 이게 왠일이여??? 야들이 진짜 내 배춘겨? 무 밭과 나란히 아주 초록 숲을 만들었으니...

얼마전 남편과 큰아들이 산에 오르다 배추 사진을 찍어 왔는데 그 때만 해도 예쁜 꽃다발 같더니...누가 농약 뿌려준 거 아녀?아님 다른 밭 농약을 좀 마신겨???...아니야 아니야 아무래도 배추모종 키울때 자매님이 농약을 담뿍 뿌린게 틀림없어.그렇지 않고서야 이래 잘 자랄리가 없지...배추벌레도 안보이고...몇 포기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무 잘 자란단 말이야. 우째 이래 잘 자라는지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나는 이쯤에서 그저 좋아라 하기만 하면 되는건가???이러다 한 방에 훅 가는거 아냐???

 

어쨌든 내가 별로 신경 안써도 내 밭 친구들은 알아서 잘 자라준다.지난 여름 나를 울렸던 옥수수는 몇 번씩이나 우리 아이들 입을 아주 행복하게 해주었는데 특히 입맛 까다로운 큰 놈에게
 "이거 엄마 옥수수야?... 엄마 옥수수가 제일 맛있어!"
최고의 찬사를 받아 나 역시 옥수수로 울고 웃고 했다.어디 그 뿐인가...지금도 고요히 한 쪽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빠알간 고추는 김치 담을때 갈아 넣어 세끼 밥 차릴 때마다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이제 고추 끝나면 빈터에 양파.마늘.시금치도 심어볼 생각이다.지지난 달 텃밭 강사님 말씀이 겨울에 나는 작물 맛도 느껴보라 하셨는데 내 입맛을 충분히 땡기고도 남는 말씀이다.

한 겨울 세찬 바람 뚫고 낑낑 자전거 밟으며 내가 시방 뭐 하는겨? 내가 왜 또 이래?? 얼마나 후회할지는 그 때 가서 후회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