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들이 제법 올라왔겠지?' '상추가 좀 커졌겠지?'
지난 몇주 동안 잎들이 좀 커져 파릇파릇 할 거라 기대하고 텃밭을 둘러보러 다녔지만 어이없게도 상추잎은 그저 새끼 손톱만하게 자라있고, 쑥갓.시금치는 과연 저게 쑥갓이고 시금치일까 싶게 모양새를 알아볼 수 없고,근대는 아예 싹도 올라오지 않아 내 속을 태우더니만...
드디어 오늘(5월2일), 상추들이 소복소복 올라와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쑥갓.시금치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데 다만 근대는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다.아무래도 씨를 너무 일찍 뿌렸나 보다.그때 씨 뿌릴때 씨앗봉투 뒤에 보니 근대는 5월 넘어 파종하라고 돼 있던데 애라 모르겠다 하고 같이 뿌렸으니...짜식들...무모한 아낙네 손에 들어온 죄로 팔자에도 없는 차가운 땅속에서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
비가 몇 번 온 뒤인데도 잡초가 별로 없다.요것조것 손 봐주고 조금 비워놓은땅에 고추 모종 열 개를 심었다.예전에 텃밭할 때는 내가 손봐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 그저 버겁기만 했는데 이번엔 왜이리 할일이 없지?고추 모종 열개라...누가 볼까 부끄럽기만 하다.땅이 없으니 우짜겠노 이렇게 생각하니 좀 당당해진다.밭에서 좀 떨어진 길가에 호박모종 한개 심고,저기 안쪽 새동신유치원텃밭 옆 버려진 땅에도 호박 하나 심었다.누가 가져가도 어쩔수 없지...
감자두둑엔 싹이 하나 올라와 있다.감동이다.다음에 올땐 여기저기 나와 있겠지...
지난주에 들렀을때, 내 오른쪽 텃밭을 보고 그게 좋아 따라 했는지 어쨌는지 이번엔 내 왼쪽 텃밭에도 탱탱하게 빨간줄이 둘러쳐져 있어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는데, 오늘 보니 다행스럽게도 처음부터 줄을 쳤던 오른쪽 텃밭에 줄이 없어졌다.무슨 일일까?정말 다행이다.어쨌든 내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시금치는 이번에 처음 뿌려 보았는데 처음 싹이 올라올 때나 좀 자랐을 때나 도저히 저게 시금치가 될까 싶더니만 오늘 보니 조금 시금치 잎인듯 하다.시금치를 보며 한가지 생각한 게 있다.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다.
쟤가 도대체 뭐가 될려고 저러나,쟤가 지금 이래 살아도 되나,이건 좀 문제있지 않나...하며 조바심 내는 부모들도 마치 시금치를 보듯 아이를 키우면 되겠다 싶다.정말 처음 싹은 그저 잡초같이 초록색 가느다란 이파리만 삐죽 올라와 있으니 저게 넙적한 시금치잎이라곤 상상하기 힘들다.물론 어느정도 커진 지금도 그렇고.내가 시금치 씨앗을 뿌렸으니까 시금치가 되겠지 믿고 잘 키우기만 하면 시금치가 되는 거다.
사실 의욕이 앞서고 내 자존심도 다치고 싶지 않아, 아닌채 했지만 실은 욕심을 부리며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큰 아이를 키우고 보니 늦둥이인 둘째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진짜 편안하다.오히려 너무 편해 방목(?)하는게 아닌가 간이 철러덩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이젠 시금치를 생각하자.비가 내려주기를 바라고 그래도 비가 안올땐 물을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내 발자국 소리 들려주고, 마음으로 이야기도 나누고... 나중에 시금치가 될거라는 믿음엔 추호도 흔들림이 없듯 내 아이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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