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화된 밭을 깔끔하게 싸~악 갈아 엎고 검정 비닐을 좌~악 덮어 8월 중순 배추.무 심을때까지 맘편하게 쭈~욱 기다린다.햇빛 쨍쨍한 여름 한복판,나도 내 밭도 긴긴 휴가에 들어간다.텃밭 하기 차~암 쉽죠~

지난 달 말 상추 다 뽑아 내고 감자 캐고 고추 굵어진 놈 몇 개 챙겨 온 이후 얼마나 덥고 비는 또 얼마나 내렸던가…보름도 더 됐을까…그때 옥수수는…채 자라지도 못하고 모종마다 벌레들이 한마리씩 웅크리고 들어앉아 그 가늘고 여린 잎사귀를 다 뜯어먹어 처참하기 짝이 없지 않았나…그날 윗 밭에서 일하고 내려오시던 할머니가 그거 못 먹는다고 싹 뽑아버리라고 하지 않았던가.그 어린 옥수수 잎들은…내 손가락만한 지렁이.입이 따악 벌어지는 개미군단은 말할 것도 없고 알 수 없는 하얗고 파랗고 시꺼먼 온갖 벌레가 우글우글한 밭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땅 속 감자도 다 못캐고 도망나온 한심하고 어이없는 주인을 만나 못된 벌레들한테 밤낮으로 시달리다 시달리다 처참하게 죽었을거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집에 돌아온 내내 마음이 몹시 부대낀다.저 옥수수가 우리 동연이라도 그냥왔을까…그건 절대 아니겠지…아…저 어린 것들이 얼마나 시달릴까…그런데 난 방법이 없다.누구는 젓가락으로 또 누구는 핀셋으로 집어내면 쉽다고 한다.난…도저히 자신이 없다...궁여지책…새동신유치원 이사장님께 밭에 가실 때 벌레 한번만 잡아달라고 부탁드렸다.주신 옥수수가 자라지도 못하고 죽어가니 그냥 뽑아버리겠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벌레를 잡아낸다 해도 약도 안뿌리니 또 덤벼들테고 너무 뜯겨 살기는 어려울거고…유치원 원장님.이사장님 보면 자꾸 숨고 싶어진다.

그래서 비바람 불고 후덥지근하다가 마침내 폭우까지 쏟아진 지난 보름동안 궁리한게 밭을 갈아엎고 비닐을 덮어놓겠다는 거다.그래서 누가 니 밭 어찌 됐나? 잘 돼 가나? 어디 구경 좀 해 보자 하면 어~지금은 배추.무 할 때까지 쉬고 있어요 하면서 뭐 좀 알고있다는척 할 참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땀이 비오듯이 흐른다. 처참하게 문드러졌을 옥수수며 고추며 정글이 됐을 빈밭을 정리할걸 생각하니 자꾸 자꾸 마음이 바빠지고 이상하게 마음이 두근두근거린다.

산 입구에 자전거를 묶는데 어찌나 맑고 센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려오는지 바쁘고 어수선한 내 맘이 좀 누그러진다.밭으로 올라가면서 다른 밭을 눈여겨 보니 참으로 무성하다.키보다 더 큰 옥수수며 깻잎,콩잎,토마토,상추,건강한 고추에 무성한 고구마줄기들…잡초도 별로 없고…나만큼 게으른 사람은 없구나…내 밭이 가까워진다.

아…아…

옥수수가 살아있다!!!

나는 그만 울음이 복받쳐 오른다…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너무 미안해서 너무너무 미안해서 주변만 서성이는데 자꾸 눈물이 흐른다…나는 너를 버렸는데 나는 니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세상에…넌 이렇게 말갛게 살아 있구나.미안하다.너무 미안하다…

뭐부터 해줘야 할까…무성한 잡초를 뽑아줘야겠다.한여름 손톱에 물들이면 좋겠다고 놔둔 봉숭아가 옥수수 옆에 딱 붙어 숲을 이루고 있다.봉숭아물이 중요한가, 죽다 살아난 내 옥수수가 백배 천배 중요하지.봉숭아도 한뿌리만 놔두고 다 뽑아버렸다.한가로이 봉숭아 물들일 타령이나 할 기분이 아니다.

고추는 모두 넘어져 있다.굵은 고추를 따 모으니 한 봉지다.막대기를 구해와 다시 일으켜 세워 단단히 묶었다.한번 더 와서 다시 손봐줘야겠다.어째 약 한번 안뿌렸는데 벌레도 안먹고 이렇게 잘 자랐을까…다음에 올땐 꼭 발효액 가져와야지…나머지 빈 밭엔 잡초를 싹 뽑아내고 파장시장에서 사온 검정 비닐을 덮었다.남들 한 거는 그냥그냥 쉽게 봤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 어떻게 덮어야 하는지 겹치는 곳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테두리는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주 막막하다.

한 서너시간은 일한 모양이다.다리.허리가 마구 쑤시고 배가 무지 고프지만, 묵묵히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내 자연의 친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고 오늘만은 힘들다 어떻다 징징거리지 않기로 했다

정리한 내 밭이 말끔하다.윗 밭에서 약 뿌리고 내려가던 그때 그 할머니가 나를 보고 반가워 하신다.잡초 때문에 애쓴다고 위로해 주시다가 내 옥수수를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

“어마!!! 그 옥수수가 이래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