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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70-01-01 08:59
"대한민국, 벼랑끝에 서다" 정태인 전 청와대경제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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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벼랑 끝에 서다" 
 
 [기고] 한미FTA라는 '괴물' 탄생…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2007-04-02 오후 6:08:00    
 
 
 
 
 
  대통령, 시장만능론의 리더를 자임하다
 
  대통령이 단단히 작심을 한 듯하다. "농업도 시장 바깥에 머물 수 없다"거나 "개방 때문에 IMF 위기 왔나"는 등의 말은 한국 시장만능론의 소굴인 재정경제부마저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들이다. 대통령은 자존심이 강하다. '어떤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릇된 판단을 한다'는 식의 말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이나 '참여정부' 초기에 했던 모든 말들을 역사에 묻어 버리고 시장만능론의 명실상부한 리더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농업도 시장 밖에 머물 수 없다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다. 국제시장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과 FTA 협상을 하는 동안은 해선 안 될 말이다. 세계에서 농가당 보조금을 제일 많이 주는 나라, 쌀 농가의 경우 1년에 6000만 원의 보조금을 주는 나라와 우리는 FTA를 맺고 있다. 농업의 환경보전 기능이나 식량안보 기능, 기타 기능은 여기에선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이제 대통령은 상식을 거스르는 것을 넘어 진실을 외면한다. IMF 위기가 개방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니 그러면 무엇 때문에 왔다는 말인가? 무슨 말씀을 하려는 것인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우리 금융 산업에 감독기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심지어 워크아웃 관련법이 없을 정도로 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이라는 얘길 하고 싶은 것이다.
 
  전문가들에게는 익숙한 얘기다. IMF가 '외환위기 내인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압박을 가했을 때 써먹은 논리이고, 또 재경부와 강경식 부총리 팀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강조했던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합금융사 등 제2금융권이 자유롭게 외화를 빌려 올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없었다면, 즉 김영삼 씨의 '세계화론'에 입각한 자본시장 개방이 없었다면 국내 위기가 왔을망정 (투자가 급속히 증가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위기의 폭과 깊이도 적었을 것이다) 통제 불가능한 외환위기로 발전했을 리 없다.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IMF 대충격이 없었으면 아직도 관치금융"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식과 반대로 IMF 대충격을 겪은 지금도 관치금융이다. 관치금융은 법과 제도를 무시한 채 재경부가 자의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산하 단체를 장악해서 금융시장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는 것이다. 한미 FTA와 같은 개방정책은 재경부 등 시장만능주의자들, 즉 관치금융의 주체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지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정녕 관치금융을 타파하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이다. 내부의 압력이 아니라 외부 쇼크를 선택함으로써 대통령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진보가 아무리 유연하더라도 시장만능론이 될 수는 없다. 이제 환상에서 깨어나시라. 이제 더 이상 5년 전의 '바보 노무현'이 아니다. 2005년 가을 이후 대통령 노무현은 전형적인 속류 시장만능론자다. 한미 FTA가 가져올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단순하게 만든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자유무역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양극화든 산업구조조정이든 결국 시장이 해결하게 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4.2 타결안'의 본질 - 관세인하와 공공성의 교환
 
  미국은 한미 FTA의 목적을 명확히 밝혔다(미 의회조사국 리포트 2006.5.23). 관세장벽보다는 비관세 장벽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는 것. 결국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바로 미국 초국적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들은 목표를 백분 달성했다. 예컨대 의약품 분야의 결과를 보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야심차게 '약값 적정화 방안'을 발표했을 때 나는 "잘하고 있다"고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단서를 붙였다. 만일 호주처럼 미국과 FTA를 맺으면서 미국이 요구한 여러 제도, 즉 의약품 특허기간 20년을 사실상 3~5년 연장하는 제도나 재심위원회를 만들어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가 약값 결정에 관여하는 제도를 만들면 이 정책은 말 그대로 유명무실로 끝날 것이라고, 즉 사실상 '사기'라고 규정한 바 있다.
 
  결과는 꼭 그렇게 됐다. 유 장관 스스로 밝혔듯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 5년간 6000억 원에서 1조 원(의료단체의 주장으로는 약 10조 원)의 추가 약값 지출이 불가피하다. 당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환자들이다. 특히 불치병 환자의 가족에게는 치명적이다. 대부분 제네릭(복제약)을 생산하는 우리 제약회사들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복제약을 시장에 내놓는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국민들 모두가 보험료를 더 내지 않으면 건강보험이 붕괴하는 건 시간문제다.
 
  미국식 FTA의 목표, 오로지 초국적기업의 이익을 위한 법과 제도의 변경은 이렇게 실현된다. 지적재산권, 자동차 세제 변경 등 국내법을 100개 이상 고쳐야 하는 경우가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미국은 주(州)법을 포괄적으로 유보했기 때문에 법 개정은 물론 할 필요가 없고 한국 기업이 한미 FTA를 들이대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피 말리는 마지막 빅딜'의 본질은 더욱 참담하다. 정부는 별 실익도 없는 자동차 관세를 낮추기 위해 환경보호의 의미가 있는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를 단순화했고, 소득재분배의 의미가 있는 특별소비세도 협정 발효 후 3년 내 5%로 단일화했다. 섬유의 관세인하를 얻어 내기 위해선 엉뚱하게도 유전자조작(GM)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완화했다. 말 그대로 돈 몇 푼 벌자고 우리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목숨까지 내맡기려 한 것이다. 또 5월에 수입하기로 약속한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을 위해 우리의 위생검역제도는 허수아비가 돼야 했다.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우)과 캐런 바티야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연합뉴스 
  우리의 목표는 달성됐는가?
 
  한미 FTA로 그래도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수출업계다. 미국의 대표적 비관세장벽인 무역구제제도로 우리 업계가 입는 손해가 매년 15억 달러라고 하니 이 분야가 우리 정부의 최우선 목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목표는 미국 법을 고쳐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간단하게 포기됐다. 법 개정이 필요 없는 무역구제위원회 설치 등이 무역구제 분과의 큰 성과라니 그야말로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다.
 
  그 다음으로 대표적인 비관세장벽으로 꼽는 것이 얀 포워드(Yarn Forward, 원사를 원산지 기준으로 삼는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이다. 정부는 85개 품목을 얀포워드 기준에서 제외시키겠노라고 호기롭게 발표했다. 그러나 협상 결과, 5개 품목으로 확정됐다. 대부분의 수출 의류가 중국제로 취급당할 테니 관세를 10% 이상 내린다 한들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거의 유일하게 내 예측을 벗어난 것이 자동차의 관세인하이다. 미국 측이 3000cc 이하의 완성차에 대해서는 관세 즉시철폐, 3000cc 이상에 대해서는 3년 만에 관세를 철폐하는 안을 냈다. 자동차 부품은 즉시, 픽업트럭은 10년 이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하다. 이미 얘기한대로 우리나라 세제를 개편하는 것은 물론이고, 할부 금융을 폐지하고 소비자 인식까지 바꾸는 등 수십여 가지의 요구를 받아들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더구나 외제차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라는 주장이라도 포함됐다면 여기에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실로 낯 뜨거운 일이다.
 
  서비스 분야의 전문직 상호 인증은 비자쿼터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됐다. 해운 강국 한국의 배가 미국 연안을 다니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역시 물거품으로 판명 났다. 북핵 문제 및 인권 문제와 연계하여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를 논의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니 가상하기는 하지만 어쩐지 부도 나기 십상인 어음의 냄새가 난다.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정부의 새로운 논리
 
  할 말이 없게 된 정부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다. 첫째, 관세인하만으로도 성공한 협상이라는 것이다(정인교 인하대 교수). 천만의 말씀이다. 관세 2.5%를 즉시 내리면 꽤 많은 가격이 떨어진다. 최대 50만 원 정도, 현실적으로는 20~25만 원 정도 떨어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 본다.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예컨대 차를 더 수출하지는 못해도 기업의 수익성은 좋아진다) 과연 이 정도로 혼다 아코드를 타던 미국인이 차를 바꿀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미국 시장이 한국 시장의 17배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17 곱하기 0은 0이다. 또 있다. 수출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던 전자산업의 경우는 대부분의 관세가 0%에서 1% 남짓이다. 그나마 2% 가량의 관세가 붙어 있는 고급가전 일부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인 마킬라도라에서 생산한다.
 
  둘째로 써먹은 논리는 '소비자 잉여론'(실제 경제학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우리가 개방을 훨씬 많이 했지만 그 덕에 수입품 값이 그만큼 싸졌으니 소비자들의 이익이라는 얘기다. 이 논리대로라면 뭐 하러 힘들여 협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우리 관세를 즉각 모든 나라에 대해 철폐하는 것이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양보라고는 모르는 미국은 소비자 이익을 외면하는, 즉 경제학의 ABC도 모르는 무지한 나라가 된다.
 
  셋째, 새롭게 개발된 논리는 아니지만 이제 전가의 보도가 된 '경쟁효과론'이다. 심지어 의약품 특허를 사실상 3~5년 연장한 것이 우리 제약회사의 신약개발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그러나 신약개발에는 20년이 걸리니 이를 감당할만한 모험투자자가 다수 존재해야 하고 충분한 전문 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당연히 제약업계는 갈 곳이 없다. 경쟁효과는 언제나 이러한 '경쟁역효과(anti competition effect)'와 함께 고려돼야 한다. 과연 관세를 대폭 내리고 비관세 장벽을 없앨 경우 미국기업과 경쟁할 만한 조건을 갖춘 산업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면 한미 FTA는 기존의 한미 간 분업구조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서비스업과 제조업에서는 미국 서비스업의 특화와 한국 제조업의 특화다. 제조업 내부에서도 첨단 부문의 미국 특화, 범용 부문의 한국 특화가 일어난다. 특히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일반기계나 석유화학 산업에서 그런 현상은 정확히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는 한국 정부가 내세웠던 목표와 정반대다. 제조업에서 중국이 쫓아오기 때문에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하고, 우리 내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쇼크까지 필요하다는 것이 저간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나라가 범용 제조업으로 특화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바로 우리 코 밑까지 쫓아 온 분야다.
 
  마지막으로 개발된 논리는 현재의 한미 FTA가 중간 수준, 또는 낮은 수준의 FTA라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흡족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별로 없다고 국민을 짐짓 다독인다. 그러나 현재 타결된 FTA는 중간 수준이나 낮은 수준의 FTA가 아니다.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등 '통상 신(新)이슈'를 빠짐없이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네거티브 방식의 서비스 개방, 래칫(역진방지) 원리, '미래의 최혜국대우(MFN)', 이 세 가지가 어울리면 이 FTA는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현재 정의할 수조차 없는 미래의 서비스는 모두 개방되고(네거티브 방식), 언젠가는 모든 서비스가 개방될 수밖에 없으며(래칫 원리), 미래에 한미 FTA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나라와 FTA를 맺을 경우 그 조항은 한미 FTA에 소급 적용된다(미래의 MFN).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강력해지는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가히 세계 최강의 FTA다.
 
  서비스 시장을 많이 유보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유보'해야 한다. 일방적 개방(unilateral opening), 즉 자발적 개방은 언제나 환영받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미국이 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별로 요구하지 않아서 실망했다는 투로 이야기한 바 있다. 요는 미국의 요구를 빌미로 개방, 즉 (대통령의 머릿속에서는) 개혁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 스스로 개방과 규제 완화의 계획을 다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부 문서 곳곳에서 서비스 시장 개방, 특히 공공 서비스 부문 개방의 열망을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공공 부문은 미국의 요구와 함께 우리 정부 스스로의 계획을 동시에 봐야 한다.
 
  더더구나 한미 FTA 찬성론자 일부는 대통령도 껄끄러워 부인하는 '경제동맹론'까지 용감하게 제시한다. 동아시아의 외교안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미국의 품 안이니 안온하다는 이 유아적 사고에 뭐라 더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괴물을 낳았다. 괴물은 곧 쑥쑥 성장할 것이다. 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다. 아직 새끼일 때는 충분히 기회가 있다. 국내법상으로는 앞으로 6월의 정식 체결(4월 2일에 한 것은 가(假)조인이다)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규정이 없지만, 미국에서는 수십 개의 자문위원회가 협정문을 검토한 후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우리 국회도 이 기간 동안 국정조사를 하든, 아니면 다른 특단의 수단을 동원해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협상 결과와 영향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안에 관한 국민투표가 아니라 한미 FTA를 체결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국민투표다. 국회는 한미 FTA의 영향평가를 근거로 대통령에게 국민투표를 요구해야 한다. 이런 당연한 의무마저 방치한다면 국회는 더 이상 민의의 전당이 아니다.
 
  물론 고집 센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거부하고 미국으로 달려가 정식 서명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바로 국회가 비준에 동의할 수는 없다. 또 한 번 미국 법이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정부는 체결된 협정을 기초로 FTA 이행법안을 9월 말까지 의회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9월이면 한국은 이미 대선의 소용돌이에 깊숙이 빠져든 상태다. 예언컨대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하는 FTA를 대놓고 지지할 간 큰 대선 후보는 없다. 내년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으니 국회의원들 역시 스스로 비준 동의를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기나긴' 기간 동안 국민의 알 권리, 표현의 자유가 충족돼야 한다. 국민이 알고, 또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야말로 한미 FTA라는 어마어마한 괴물을 잡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정태인/성공회대 겸임교수,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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