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린코프 연수 및 ‘아시아 민중 후쿠오카 모임 참가’ 후기

경기남부두레생협 상무이사  박동무

        11월 7일(금)부터 11일(화)까지 그린코프 연수 및 ‘아시아 민중 후쿠오카 모임’에 참가하기 위하여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심각한 가운데 진행된 연수는 공항에서 환전을 하는 순간부터 더욱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2개월 전에 비해 엔화가 무려 50%나 올라가 있는 상황-우리는 이런 시절을 나중에 무어라 부르게 될까?- 이런 의문과 문제의식이 연수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민중 후쿠오카 모임’ 국제회의>

        <호혜를 위한 아시아 민중기금>의 설립 준비대회를 겸한 자리였습니다. 그동안 우리 두레생협은 필리핀 네그로스의 설탕, 팔레스타인의 올리브유, 동티모르 등의 유기농 커피에 이르기까지 민중교역의 폭을 넓혀 왔습니다.

이러한 민중교역은 저개발국가의 생산자들과 안전한 먹거리를 직교역함으로써 그들의 생산기반이나 생활조건들을 개선하도록 돕는 매우 의미 있는 생협의 사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민중교역은 한국과 일본의 생협과 저개발국가의 생산자사이에 각기 따로 따로 진행됨으로써 힘이 한데로 모아지기도 어렵고 또 생산자와 생산자의 상호관계도 형성되지 않는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기금의 발기인들은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은 일본이나 한국을 중심에 두고, 더욱이 대각선적으로 구성된 관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즉, 필리핀(네그로스)과 팔레스타인.인도네시아.동티모르.파키스탄 등의 사이에는 상호교류와 연대가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 대각선적인 관계를 네트워크화하고, <남>의 민중과 <북>의 시민간의 상호교류와 연대망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들 민중교역망은, <남>의 물산의 수공업적 생산과, 이를 <북>의 시민에게로 운반하는 단순하면서도 수공업적인 교역활동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남>의 민중의 풍부하고 다양한 가능성의 씨앗을 길러내고, 꽃피우고 결실을 맺게 하며, 나아가 이를 <북>의 시민들에게로 연결시키는, 그러한 종합적인 민중교역사업으로 성장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지금이야말로 민중에 의한 호혜적인 금융사업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회의에는 다음과 같은 단체들이 함께 했습니다. 필리핀의 생산자 단체, 인도네시아의 생산자 단체, 동티모르의 생산자 단체, 파키스탄의 알 카일 아카데미, 팔레스타인의 생산자 단체, 파푸아뉴기니의 생산자 단체, 일본의 생협단체들로서 그린코프, 생활클럽생협, 대지를 지키는 모임, 팔시스템생협, 민중교역회사인 ATJ와 비영리활동법인 APLA, 일본 소비자 연맹, 그리고 한국의 두레생협이 참여하였습니다.

참여단체들은 각각 자기들의 활동내용들을 소개하고 어려움들을 서로 나누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아~ 우리가 각자 태어난 곳들이 달라서 그렇지 내가 거기에 태어났더라면 바로 그와 같은 모습들로 살았겠구나 하는 한 생명으로서의 일체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아시아 민중기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서는 주로 이 기금의 대출에 대한 이자율이라든지 환율의 위험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의 문제들이 주로 논의되었습니다. 기금을 이용할 단체들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상환의 의무가 있는 대출로서 해결하기 어려운 절실한 문제들 (예를 들면 농로의 개설이라든지)이 있기도 하고 또 아예 대출과 상환의 개념조차 없는 나라의 생산자들도 있다고 보고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 기금은 매년 3,500만엔(약 4억원)씩 조성하며(설탕과 바나나등에 기금을 붙여서) 각 나라의 형편과 요구에 맞게 건실하게 성장시켜 나가도록 결의되었습니다.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 작성된 대출사업계획들이 제출될 것이고 창립총회를 통해 운용계획이 확정될 것이라고 확인하였습니다. 많은 논의들을 마치면서 국제회의는 이 ‘호혜를 위한 아시아 민중기금’의 정식 창립대회를 내년에 한국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두레생협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이 모임의 백미는 역시 한국의 김지하 시인께서 강연을 한 것이었습니다. 강연의 제목은 ‘호혜를 전면에, 교환을 일상으로, 재분배를 준비하며’였는데 아마도 통역의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거의 1,000여명의 그린코프생협 조합원들에게 많은 울림을 가져올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전 세계 인류경제사의 대전환점입니다.”로 시작한 시인의 강의는 고대의 호혜시장으로, 한국의 촛불운동으로, 역(易)사상으로, 우주와 지구의 대변동적 사건으로, 생명체적 새로운 진화로, 작금의 신자유주의 경제의 붕괴로 종횡무진 돌아치고 “호혜시장은 말할 것도 없이 모심의 경제다”라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시인은 인류사적인 전진을 가로막는 일본 극우파의 ‘다시 한 번 100년을’에 대하여 경고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100년을’을 외치는 극우파들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일본의 벗들의 막중한 책임이라고!

마지막으로 두레생협의 방문단은 일본 그린코프 생협의 조합원들에게 소개와 인사를 대신하여 ‘노래’를 선사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이지만 열심히 연습도 했고 그린코프 생협의 조합원들도 박수로서 호응해 주었습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린코프 연수 - 조합원 사무국>

        그린코프 생협 연수의 핵심 주제 중 하나가 조합원 사무국이었습니다. 각 단위생협의 조합원이사장님들과 함께 연수를 했기 때문에 조합원사무국에 대하여 설명하시던 정길자 선생님은 “이사장님들은 퇴임하면 생협을 떠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조합원사무국을 최소 3년에서 5년은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조합원사무국을 하신 다음에는 워커즈를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라고 제 1성(聲)을 말씀하셨습니다. (이하 연수내용 요약)

조합원 사무국은 꼭 필요하다!

        생협을 무한한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아이에 비유한다면 직원사무국은 아버지와 같고 조합원사무국은 어머니와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르지만 한 가정에서 꼭 필요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신하기는 어렵다. 조합원사무국은 직원사무국으로 하여금 정말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추동하며 생협의 조합원과 함께 달려가는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생협의 어머니 같은 ‘조합원사무국’이 없으면 조합원이 꿈을 마음껏 펼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조합원사무국은 잘 훈련된 사람들의 조직이어야 한다. 일반 조합원들의 조직은 아직 혼란상태속에서 돌아갈 수 있지만 그것을 잘 조절하고 조율해내고 리드해주는 것이 조합원사무국의 역할이 된다. 워커즈도 역시 카오스적인 조직이다. 따라서 ‘조합원사무국’이 있어서 이런 카오스 조직들의 관계를 조절해 주지 않으면 워커즈를 비롯한 카오스 조직들을 오랜 세월 허송세월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조합원사무국은 퇴임한 이사들이 담당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신규이사진을 서포트하면서 조합원들을 이끌면서 생협의 모든 사정들을 잘 이해하며 그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다. 퇴임이사(장)는 본인이 전직 이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이사(장)을 아래에서 서포트하면서 각종 활동들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조합원사무국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과거에 이사 또는 이사장으로서 활동을 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말로 하면 ‘모심’의 리더쉽을 발휘하는 자리가 ‘조합원사무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합원사무국은 조합원의 활동-운동에 관해 기획하고 그 안건을 이사회에 제출하고 또 이사회에서 결의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물론 직원사무국도 함께 하지만 직원사무국이 어떤 문제를 사업의 관점-경영의 관점에서 진행한다고 하면 조합원사무국은 운동의 관점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어떤 생활재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생활재 개발의 방향이나 컨셉-조합원의 요구사항의 결집 등의 내용은 조합원사무국이 담당한다면 직원사무국은 그러한 내용을 어떤 생산자로부터- 어떤 가격에- 어떤 물류시스템을 통하여 공급할 것인가의 문제를 담당한다고 설명하였다. 전반적으로 조합원사무국은 운동을 담당하고 직원사무국은 훨씬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경영을 담당한다고 하는 생각이 그린코프에는 일반화 되어 있었다.

조합원사무국은 미숙한 단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사무국을 시작하는데 어떤 조건의 성숙이 필요할까?’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의외의 대답은 미숙한 단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오히려 인내심을 준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냐하면 아무리 잘 준비해도 최소 3년간은 어려운 ‘카오스’의 시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그 카오스의 시기동안 직원과 조합원사무국 - 이사회 등등이 서로 자기의 자리를 잡아나가는 성숙의 시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조언으로 들렸다. 또한 어려운 시기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혀서 겪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며 그 성숙의 시기를 통해 ‘조합원 주권’이 확립되는 생협이 될 수 있다는 금과옥조?

지난 1년 동안 조합원활동위원회를 겪어내 온 우리 생협에서 조합원사무국의 화두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연수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가 되었다. 이제 우리 모두의 화두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그린코프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일본의 주류생협(자본화 되거나 유통기업화한 생협을 주류생협이라 한다)이나 거대자본들에 둘러싸여 어려움을 겪을 무렵, 생협의 정체성을 버리고 유통업체처럼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버티다가 고사할 것인가 라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때에 그린코프가 기치를 내걸었던 것이 바로 ‘조합원 주권’이요 그 핵심이 ‘조합원사무국’이었다고 한다.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지금에 와서 여타의 많은 진보적 생협들이 앞 다투어 ‘조합원사무국’을 도입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경영이 매우 어려운 시점에서 그린코프가 ‘조합원사무국’에 매진한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경영에 보탬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 뻔하고 오히려 생협이 ‘카오스’적인 혼란에 부딪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어려움이 닥쳤을 그 시절에,

전문적인 것보다 생활적인 것을,

강제적 규율에 의한 노동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조합원 노동을,

높은 임금을 지향한 노동보다 호혜를 지향하는 노동에 대하여 굳게 신뢰하고, 그 힘에 의거하여 굳게 서서 마침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는다. ‘조합원 주권’을 향한 그들의 확고한 철학만은 배우고 싶었다. 나는 일본을 별로 좋아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린코프 연수 - 생협의 복지사업>

        장애가 있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노인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파산상태를 당한 사람도, 누구라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그린코프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복지’에 대한 생각이다.

1996년 복지사업에 대한 생각을 처음 하기 시작했을 때 ‘먹거리’사업만 잘 하면 되지 왜 생협이 ‘복지’문제까지 부담을 떠안으려고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도 많았다고 한다. 더욱이 생협이 경영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은 무려 조합원 총 20만명 중 10만명의 앙케이트를 받을 정도로 조합원들 간에 많은 논의를 진행하여 ‘복지’를 생활의 보편적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복지연대기금

        그린코프의 조합원은 매달 100엔씩의 ‘복지연대기금’을 납입하고 있다. 전체 40만 조합원 중에 30만 명 이상이 모금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니 1년이면 3억 6천만 엔(한화 약 40억원 상당)이 모금되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단결된 모습이 얼마나 큰 사회적 힘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되었다.

지역복지센터

        그린코프가 지역에 설립한 종합복지센터를 견학했다. ‘복지기금’으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1층에는 치매(그들은 치매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인지증’이라는 말을 쓴다고 했다. ‘치매’는 인격을 무시하는 말이기 때문이란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이 낮에 와서 하루를 보내고 가는 곳이다. 그들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뜨개질 비슷한 손작업을 하기도 하고 또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복지워커즈 조합원들이 이 모든 과정에 진실한 도움자들이 되고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자신들 앞에 있던 나무테이블을 붙여놓고 탁구를 치고 있던 할아버지와 젊은 남자직원의 파안대소는 내 마음에도 희망을 전해주었다.

2층에는 중증 인지증(치매)노인들이 24시간 케어를 받는 시설이 있었다. 그 분들의 안정을 위해서 직접 시설을 둘러 보는 것은 자제해야만 했다.

3층에는 홀로 외롭게 사는 것을 힘들어하는 고령자들이 입주하여 서로 어울려 살고 또 워커즈 조합원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고령자숙소가 있었다. 그들은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시설을 전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그린코프의 조합원 워커즈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확한 인원을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대략 200여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린코프 전체적으로는 약 2,500여명의 조합원이 워커즈 복지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시설은 자체로 자립적인 경제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단다. 부족한 재정은 그린코프에서 채운다고 하면서 활동가는 겸연쩍어 한다. 한 마을에서 ‘인간다운 복지’를 창조함으로써 일본 전체의 ‘복지의 눈높이(가치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하는 활동가의 말에서 생협 복지사업의 또 다른 확장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린코프는 현재 신용불량자나 파산자 등의 생활파괴자들에 대한 ‘생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를 시종일관 안내해 준 정길자 선생님(그녀는 할머니로서 과거 단협의 이사장, 조합원사무국장, 매장워커즈 등을 두루 거친 재일교포이다.)은 현재 노숙자 홈리스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해 주는 워커즈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앞으로 장례사업에까지 복지사업을 확장하여 그야말로 ‘태어남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협이 함께하는 복지를 이루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문명이 소용돌이치는 시대의 여울목에서 우리 두레생협이 어디를 향해 가야할지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그린코프의 <조합원사무국-조합원주권-복지사업>은 또 하나의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 주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