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보는 파란 하늘빛이 눈이 부신 날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만 먼 길을 떠난 게 아니었나 봐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도로로 쏟아져 나왔나 싶을 정도로 길이 막혔죠. 그래도 짙은 초록빛 녹음에 투명한 햇살에 지친 몸과 맘이 한순간에 치유되는 것처럼 좋더라구요. 전보다 더 젊어지신 듯한 박동무 상무님, 낯익은 얼굴들, 훌쩍 커버린 아이들까지 1년에 한두 번이지만 뵙는 얼굴이지만 늘 이맘때면 함께하는 우리의 이웃들이라 무척 반가웠답니다.
12시가 다 되어 원주에 도착하였고, 여기저기 수도권 각 지역에서 오신 생협 조합원들과 원주 생산자 분들이 모두 모여 고산초등학교에서 풍년기원단오제를 거행(?)하고 각 마을로 흩어져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생산자분들의 트럭을 타고 마을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정겹던지, 애나 어른이나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는 걸 보니, 이것이 바로 우리 농촌의 힘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영산마을로 갔는데 이미 준비해 놓으신 음식들의 고소한 냄새가 우리를 먼저 반겼죠. 아이들을 어느새 커다란 나무에 매어놓은 그네에 매달려 그야말로 제대로 단오제를 즐기고 있었고, 나물에 보쌈에 갖가지 야채에 걸쭉한 동동주까지 그야말로 무공해 진수성찬으로 배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게 원망스러울 만큼 푸짐한 점심을 얻어먹었답니다.
불룩한 배 두드리며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동무삼아 논두렁에 우렁이를 방사하러 갔는데, 생산자분 말씀이 강원도는 산짐승이 많아 오리농법보다는 우렁이 농법을 더 많이 하신다고 하시더라구요. 통통한 우렁이들이 땅속 구석구석을 헤집어 놓으며 벌레며 잡초며 안먹는 게 없다네요. 우렁이 값이 좀 버겁지만 시에서 친환경농사를 권장하는 차원에서 그 비용을 조금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 땡볕에 농약의 힘을 빌지 않고 농사지으시는 일이 얼마나 힘드실까, 정말 쌀 한톨 버리지 말고 맛나게 먹어야 겠다는 다짐이 불끈 솟았답니다. 그 다음엔 논에 쌀겨를 뿌려주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 쌀겨가 물 위에 얇게 떠 있어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기도 하고, 벌레나 잡초가 생기는 것을 막아 준대요.
그리고 드디어, 송아지에게 옷을 입혀주러 갔어요.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때문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송아지가 안그래도 커다란 눈망울이 더욱 커져서 이리저리 날뛰는 바람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답니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서 곧 우리의 밥상에 오를(?) 것을 바라며 여기저기서 뜯어온 풀을 주느라 정신이 없었죠.
어느새 생산자분들의 트럭이 리무진처럼 미리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고, 다시 고산 초등학교에 모여 제대로 판을 벌리며 놀았답니다. 창포 머리감기, 떡메치기, 팔씨름대회, 굴렁쇠 굴리기, 텃밭만들기 등등 생산자분들께서 준비해 주신 다양한 행사는 지금껏 말로만 듣거나 책으로만 보던 모습들이었어요. 하나라도 놓칠세라 아이 손잡아 끌며 떡도 얻어먹고, 우리만의 예쁜 텃밭도 만들고 창포에 머리도 감으며 정말 친정 엄마집에 놀러온 것처럼 마냥 즐겁고 흥겨운 시간이었지요. 최고의 하일라이트는 생산자분과 조합원이 한 팀이 되어 달리는 쌀농사 이어달리기였어요. 우리 달리기처럼 네가 이겨도 좋고 내가 이겨도 좋은 그런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FTA니 시장개방이니 이런 거 모르고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 세상, 땀흘린 만큼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그런 세상이 왜 그리 힘든 걸까요.
이 분들의 깊은 주름살에 굵은 손마디에, 땀방울의 진실을 접하면서 감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러면서 죄송한 마음도 드네요. 집에 가면 난 죽어도 우리 농산물만 먹을 거다,두개 먹을 거 하나만 먹으면 어떤가요, 우리 땅을 지키는 이 분들, 그리고 우리 소비지들, 제대로 된 우리 꺼 먹으며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요, 안 그래요?
우리 애들 선생님한테도 생협 꺼 선물드리면 무쟈게 좋아하신답니다.
생산자분들, 진짜 고마워유~~ 가을걷이 때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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